[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까불지 마라 다친다
‘까불지 마라. 다친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이다. 촐랑대고 까불면 종국에는 사고 친다. 어릴 적부터 할 일 없이 생각에 골몰해 멍 때리며 길 가다가 넘어져 무릎 성한 날이 없었다. 그 뿐이랴! 좋은 일 궂은 일, 안 가리고 앞장서 설치다가 반 대표로 나 홀로 벌 서고 사고뭉치로 교무실을 들락거렸다. 어릴 적 촐랑대며 벌인 사고는 철 들면 좋아질 확률이 있지만 나이 먹고 까불면 정말 꼴블견이다. 나이 들면 처신을 바르게 잘 해야 어른 대접 받는다. 처신(處身)은 세상 살아가는데 가져야 할 몸가짐이나 행동이다. 처신을 잘못하면 망신살이 붙거나 패가망신 한다. 처신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가피하게 맞닥드리는 위기 상황에 바르게 대처하는 자세인데 비해 처세는 임기응변으로 자신의 유리함과 생존을 꾀하는 수단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도 걱정은 태산이다. 국가의 미래와 국민에는 관심 없고 모략과 권모술수가 판치는 졸개들의 신 군웅할거(群雄割據) 시대가 도래했다. 후한 말 정치는 암흑기에 접어들고 황제는 허약하고 무력한 허수아비에 불과해 조정은 환관세력인 십상시가 권력을 휘둘렀다. 이 틈을 타 지방 호족세력들은 온갖 수탈로 농민과 백성들을 핍박하고 천재와 전염병 창궐하면서 황건의 난이 일어난다. 강력해진 세력의 지방 호족들은 황건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군사적으로 더 큰 힘을 갖게 된 동탁, 공손찬, 원소, 원술, 유표 등의 쟁쟁한 군웅들과 서로 뺏고 뺏기는 전쟁을 이어간다. 결국 조조, 손권, 유비의 각축전으로 좁혀지면서 군웅할거의 국면은 마무리 된다. 군웅할거는 여러 강한 자들의 권력 다툼으로 엎치락뒤치락 하는 영웅들의 전쟁을 뜻한다. 뛰어난 능력을 자랑하며 추앙 받던 인물이 단 한 번의 말실수와 잘못된 행동으로 최후를 맞기도 한다. 뛰어나 보이지 않던 인물이 가늘고 길게 끝까지 살아남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조조에게 ‘나의 장자방’이라는 헌사를 들으며 그의 대업 달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순욱은 단 한 번의 말실수로 죽음에 내몰렸다. 반면에 조조를 죽음의 위기로 내몰았던 가후는 조조에게 중용되었고 그의 아들 조비와 조예 때까지 중책을 맡으며 80세까지 장수했다. 작금에 벌어지는 국가 위기를 살펴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영웅들의 군웅할거가 아니라 졸개들의 난동으로 보인다. ‘난세에는 지는 것이 이기는 길이다’라는 말도 힘이 없어 보인다. 처신을 잘 못 하면 높은 곳에 올랐다가 낭떠러지로 추락힌다. 몸 둘 곳을 잘 알아야 살 길을 찿는다. 함부도 단정 짓고 자신의 우월함과 능력을 과신하면 나락에 빠진다. 좋은 말하는 입보다는 바른 말 듣는 귀를 가진 사람, 잘난 사람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 뛰어난 능력보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 한 입으로 두 말 하지 않는 사람, 타인을 얕보고 무시하지 않는 품성을 가진 사람, 멀리 바라보고 현재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 처신을 바르게 잘 하는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 사람 사는 건 매 한가지다. 분수에 맞지 않게 까불고 설치면 다치고 몰락한다. 중책을 맡은 자들이 중심을 못 잡으면 나라가 거덜난다. 법보다 정치보다 사람이 먼저다. 국민을 존중하고, 나라를 바로 잡는, 심성이 올곧은 지도자가 이 풍진 세월 속에 혜성처럼 나타나기 바란다.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지방 호족세력들 사람 처신 국가 위기